포도밭 순따기 거들러 간 주말
포도 농사 짓는 처가에 내려가 비닐하우스에서 순따기를 거든 주말 이야기. 몇 번 해보니 손에 익은 작업 — 왜 순을 따는지, 어떤 순을 골라 따는지, 곁순 제거와는 어떻게 다른지 차근히 적었다.
주말마다 챙기던 일이 하나 늘었다. 포도 농사 짓는 처가에 내려가 일손을 보태는 것. 누가 부른 것도 아니고 와달라고 한 것도 아니다. 지금이 한 해 중 제일 바쁜 철인 걸 아니까, 그냥 내가 챙겨서 내려간다. 차 트렁크에 작업복부터 넣고 시동을 걸었다. 처음 몇 번은 어색했는데, 이제는 마을 어귀 풍경만 봐도 마음이 먼저 편해진다.
좁은 농로 끝으로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하늘은 거짓말처럼 파랬다. 여기 오면 늘 하늘부터 올려다보게 된다.

바람이 통하는 하우스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옆구리가 트인 하우스라 사방이 꽉 막혀 있지 않은데, 마침 바람이 시원하게 들고 났다. 비닐 사이로 흘러드는 바람에 잎들이 한꺼번에 살랑거렸다. 두 줄로 나란히 선 포도나무가 천장까지 덩굴을 뻗어 터널처럼 이어져 있고, 바닥엔 잡초를 막는 멀칭 비닐이 깔려 있다. 머리 위로는 새순과 잎이 빽빽하게 엉켜 있었다. 올 때마다 한 뼘씩 더 우거지는 게 눈에 보인다.

구석에 놓인 가위를 챙겨 들고 익숙한 줄 앞에 섰다. 굳이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오늘 뭘 해야 하는지는 안다. 순따기다.
멀쩡한 순을 왜 따냐고
처음 거들 땐 잘 자란 새순을 일부러 잘라내는 게 영 아까웠다. 지금은 왜 그래야 하는지 손이 먼저 안다.
포도나무는 봄부터 무서운 속도로 새순을 밀어 올린다. 그냥 두면 나무가 가진 양분이 사방의 순으로 흩어져 버린다. 정작 포도송이로 가야 할 영양분이 모자라는 것이다. 잎이 너무 무성해지면 바람이 통하지 않아 습기가 차고, 그러면 병충해가 오기 딱 좋은 환경이 된다. 잎 그늘에 가려 포도송이까지 햇빛이 닿지 않는 것도 문제고.
그래서 필요 없는 순을 솎아내 꼭 남길 순에 힘을 몰아주는 것, 그게 순따기다. 덜어내야 잘 큰다는 게 처음엔 잘 와닿지 않았는데, 가을마다 결과로 확인하다 보니 이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떤 순을 남기고, 어떤 순을 자르나
처음엔 내 눈에 다 똑같은 초록 줄기였다. 몇 번 따라 하다 보니 이젠 어느 정도 손이 알아서 간다.
줄기 아래쪽에서 올라온 순, 같은 마디에서 여러 개가 한꺼번에 나왔을 때 그중 힘이 약한 순, 열매가 달리지 않는 순은 미련 없이 잘라낸다. 안쪽으로 파고들어 바람길을 막는 순, 남들보다 한참 늦게 올라온 순도 마찬가지다. 손끝으로 줄기를 쓸어보면 튼실한 순과 어정쩡한 순이 확실히 다르다.
그래도 헷갈릴 땐 어김없이 장인어른을 부른다. 십수 년 손이 어디 가겠나.

순따기와 곁순 제거는 좀 다르다
처음 거들 무렵엔 순따기랑 곁순 제거를 같은 말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농가마다 부르는 법이 조금씩 다르다.
순따기는 필요 없는 새순 자체를 솎아내는 일이고, 곁순 제거는 주순 옆 겨드랑이에서 2차로 나오는 순을 떼어내는 일이다. 둘을 묶어 그냥 “순친다”고 부르는 집도 많다. 어차피 목적은 하나, 살릴 가지에 힘을 몰아주는 것이다.
이걸 제때 잘해두면 가을에 포도알이 굵어지고, 당도가 오르고, 색도 곱게 든다. 병도 덜 생기고 수확량과 품질이 같이 올라간다. 지금 흘리는 땀이 몇 달 뒤 식탁 위 포도 한 알에 들어가는 셈이다.
품종마다 손이 다르다
해마다 느끼는 건데, 품종에 따라 순따기 시기와 강도가 꽤 다르다. 샤인머스캣이냐 캠벨이냐 거봉이냐에 따라 잎을 남기는 정도며 손대는 타이밍이 달라진다. 같은 작업이라도 나무가 다르면 손도 달라야 한다는 걸, 여러 번 거들고 나서야 몸으로 알았다.

돌아오는 길에
반나절 남짓 가위질을 했을 뿐인데 손목이 얼얼하고 목덜미가 따끔거린다. 익숙해졌다고 몸이 안 힘든 건 아니다. 두 분은 이걸 매년, 하루 종일, 몇 주씩 하신다. 마트에서 무심코 집어 들던 포도 한 송이가 얼마나 많은 손을 거치는지, 올 때마다 새삼스럽다.
가을에 이 하우스가 보랏빛으로 가득 찰 걸 생각하면 벌써 기다려진다. 그땐 순따기 말고 수확을 도울 차례다.